“정기 주주총회를 좀 부탁해야겠습니다.”
어느 날 CEO가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냐며 다가와 요청한 말이었다.
주식 투자를 해본 사람은 많겠지만, 실제 주주총회에 참석해본 사람, 혹은 직접 주최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주총회 진행이라니 뉴스에서나 본 삼성전자 주주총회 등이 떠오를 뿐이었고 구체적으로 무슨일을 해야하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처음엔 농담 섞인 반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저한테 코딩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 걱정되네요.”
그러자 대표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자리를 떴다.
300명의 직원이 있는 기업에서 주주총회할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는 대표의 뒷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일어서는 대표를 붙잡고 법무법인과 협업해서 진행해 보겠다는 답을 드렸다. 한편으로는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주식회사라면 주주총회를 다 하므로, 한국에서 수만개 기업의 주주총회 담당자가 있을 것이고, 그들이 하는일을 내가 하지 못할게 뭐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이 S사에서 정말 많은 “처음 해보는 일들”의 시작이 되었다.
1. 정기 주주총회 – 생각보다 복잡한 절차의 시작
상법상 1년에 한 번 정기 주총은 반드시 열어야 하며, 이때는 전기의 회계감사자료와 사업보고가 주주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사안에 따라 수시로 임시주총을 하기도 하는데 안건이 주총 결의 대상인지는 관련법률, 정관과 세부 규정, 투자계약서 등에 어떻게 명시되어있는지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주주총회는 당연히 주주들의 참석이 필요하므로 미리 소집을 통보해야하는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초대를 해야하는지조차 법에 명시되어있다.
S사의 경우 전자소집 시스템이 없어, 주주 명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우편으로 소집 통지서를 보내야 했고, 문제는 주주들이 주소 변경을 회사에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반송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주들에게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으므로 문제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송달 여부가 아니라 통지를 했다는 ‘행위 자체’ 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포인트였다. 즉, 주주 한명씩 연락해서 연락처 업데이트를 요청할 것까지는 없다는게 실무자 입장에서는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의결의 통과를 위해 어느정도 찬성을 독려할 필요는 있는데, 보통결의사항의 경우(반대로 특별결의 사항이 있다) 참석주식의 과반 & 발행주식의 25% 찬성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지분율을 계산하여 참석 혹은 위임을 요청해야만 하는 주주들이 있으니 이부분은 챙겨야한다.
그 외에도 실무적으로,
- 의결권 확인 및 위임장 정리
- 주주 실명 대조
- 의결 결과에 따른 등기부등본 반영 및 등기소 업무
등의 절차가 이어지는데, 어차피 등기나 공증을 위해서는 법무법인 혹은 법무사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지금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만, 처음 해보는 그 순간에는 매 순간이 낯설고 헷갈리는 업무였다.
법적 요건이 포함된 만큼 실수 없이 진행해야 했기에, 더욱 꼼꼼히 챙겨야 했던 경험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S사의 2023년 정기 주총은 너무 정석대로 (전화 돌려 독려하고, 서면 외 이메일까지 발송하며) 추진한 탓에 주총장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주주들이 몰려 오히려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실무적 팁을 제공하자면 의안이 통과될 정도의 주주분들 참석이 확정된다면 나머지 분들의 참석은 너무 독려하지 않는게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소위 말하는 주총꾼이 와서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2. Runway 관리 – 자금 고갈의 시간을 넘기는 법
‘Runway’는 스타트업에서 자주 쓰는 용어인데, 쉽게 말해 현재 보유 자금으로 회사를 몇 개월 운영할 수 있는지를 계산한 지표이다. 일반 기업은 기본적으로 현금흐름표와 PL상 이익이 남는것을 기준으로 수입과 지출을 관리해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이미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라섰기 때문이 이익잉여금과 미래 현금창출로 인해 곶간에 현금 자체가 없어질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미래 수입이 불확실하고(사실 매달 돈이 줄어들고), 미래를 위한 지출은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자금이 소진되는 시점 자체를 KPI로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꿔말하면, 일반 기업의 재무팀이나 회계사 경력만을 가진 분들이 CFO로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된다면 현실적으로 관리가 어려운 부분이 될 수 있다. 기존에는 관리해본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총 이후에 해당 업무도 나한테 추가로 주어졌는데, 누구에게 배울수도 없는 일이라 팀과 머리를 싸매고 방안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S사에서 구매의 범위는 직원 인건비, 세금, 금융 수수료를 제외한 모든 지출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는 I사가 이와 같이 지출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 방식 그대로 S사 구매를 고도화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세팅을 했기 때문이었다.
Runway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 자금의 소진 시점이므로 회계상의 비용과 현금 유출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구매 항목에 Payment term(지급 조건) 정보를 붙여 실제 현금 지출 스케줄을 계산 가능한 구조로 만들수 있었고, 필요한 사전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을 이미 완성해둔터라 효과적으로 항목별 지출 내역/예산 대비 운영비 집행률/월별 현금 유출 계획 을 기준으로 Runway를 계산할 수 있었다. Runway는 투자자들이 반드시 물어보는 항목이기도 하지만, 스타트업은 생존과 관련된 항목이었고, 실제로 S사에서 runway를 계산해보니 부도위험이 감지된 달이 있어 (당시 시리즈 투자금 납입이 법적 절차로 인해 지연되었음) 항목별로 전 팀이 뛰어들어 유예 협상을 하고, 때로는 지연이자를 감내하면서 ‘Death Valley’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사례는 지금도 동료들을 만나면 단골 안주로 이야기하는 사례이다.

이렇게 조금씩 업무범위가 확장되면서, 더 많은 일들을 2023년부터 계속 받게 되었는데, 대부분 사실 처음 맡게된 일들이었다. 투자유치, IPO 준비 등 그간 해보지 않았던 업무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처음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진행했는지의 내용을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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