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0대 아저씨 이야기

[에세이]2화 슈퍼 신입사원

728x90
반응형

L전자회사의 TV사업부 구매팀이 나의 첫 직장이었는데, 연간 10조원이 넘는 금액을 구매에 사용할만큼, 구매팀이 시장에서 가지는 Buyer로서의 파워가 큰 회사였다. 

 

디스플레이 패널이라든가 유리기판 등은 시장에 공급자가 한정 되어있는 seller 중심의 시장이었지만, L사는 해당 부품을 그룹내 계열사들로부터 주로 공급 받았기에, 해당 부품을 공급하는 계열사 이외의 공급자마저도 L사와 거래를 위해 공을 들이는 형국이었다.  

 

 내가 맡은 부품은 PCB(Printed Circuit Board)라 하여 반도체와 각종 부품들을 증착하여 TV에 넣는 부품이었는데, 위에서 말한 핵심 부품들을 제외하고는 연간 구매액이 5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큰 아이템이었고, 전임자(사수) 역시 팀에서 인정받는 차장님이셨다. 부담감이 있었지만, 신입 특유의 패기와 열정으로 스스로 학습하도 많이 했고, 거래처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OJT 를 통해 원재료, 원가구조, 제조공정, 경쟁구도, 협상방법 등을 학습한 결과, 빠른 시일 내 1인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구매팀 업무는 금액이 높을 수록, 공급자 중심의 시장일 수록 팀내에서 관심도가 높아지는데, 나의 경우는 금액이 높은 아이템이라 내부적으로는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컸다. 상대적으로 큰 비중의 아이템에서 성과를 내면 적은 금액의 아이템은 성과가 잘 나지 않아도 팀의 성과를 맞출수 있게 되고, 각자 맡은 것이 다르더라도 결국 팀이 성과를 내고 전체적인 숫자가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회사가 운영되는 방식이므로 PCB 담당자는 늘 회로구매 부서 내에서는 1번타자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음의 몇가지 이유로 실적을 달성 할 수 있었고, 선배들은 나를 슈퍼신입사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실적을 맞출 수 있었던 이유>

1. 공급자들과의 협상이 수월한 편이었다. 시장구조상 공급자는 많고 수요자는 적은 아이템이라 기존 공급자들은 거래를 유지면서 물량을 늘리기 위해 힘쓰고, 잠재 공급자들은 거래를 트기 위해 애를 쓰게 되면서 자연스레 가격 경쟁구도가 형성되어 원가 절감 목표를 달성 할 수 있었다.

2. 사내 정치적 사유. 전임자인 사수가 파트장이 되면서 공급자들이 말그대로 알아서 파트장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절감에 협조하게 되었다.

 

 내 실력이 아니라 시장의 구도가, 회사의 파워가 내 업무 성과를 내고 있었던 것 뿐인데,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자만했던 것 같다. 

언제까지고 내가 잘나갈 것 같다는 착각을 했고

나같이 잘난 사람은 사회에 기여를 해야하는데,

회사는 비용절감이라는 목표를 위해 공급사에 무리한 부탁(압박)을 하고 공급사는 구조조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다면 선진기업들은 과연 어떻게 하는지 배워서 이들을 계몽 시켜야겠다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사한지 2년만에 L전자회사를 떠나, 당시 가장 선진화된 구매조직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던 미국의 거대 IT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728x90
반응형